솔직히 말하건대, 그동안 비합법적으로 웹상에서 다운로드한 음악과 영화가 참 많다. "내가 사주지 않아도 많이 팔리겠지", 혹은 "이것들은 돈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없어" 따위의 합리화로 고민을 넘긴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문화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은 일종의 의사표시 과정이다. 내가 A라는 곡을 구매하는 행위는 A곡의 작곡가와 음반사에 "그 음악에 만족했으며 앞으로도 비슷한 느낌의 곡들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라는 의사를 전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피드백 과정으로, 내 취향에 맞는 곡들이 더 많이 나온다면 결국은 나의 기쁨이 되는 거다. 어찌 보면 음원 구매는 투표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에는 예전에 불법으로 다운로드했던 곡들을 하나하나 구매하는 중이다. 사실 곡 당 가격이 500~600원 정도이다 보니 크게 부담은 가지 않는다. 좋은 음악 한 곡이 캔음료 한 잔 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수록곡의 70% 이상이 맘에 들면 앨범을 사고, 그렇지 않으면 개별곡으로 구매한다는 나름의 기준도 세웠다. 어쨌든 제값을 주고 음악을 들으면 더 뿌듯하다.
그런데 디지털 음원을 구매하다 보니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사용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DRM(디지털저작권관리)의 적용이다. DRM은 MP3가 대중화된 이후에 나온 사후적 수단이다 보니 적용 기기의 폭이 매우 적다. YEPP 초기모델, 클리에, 네트워크 워크맨, Z(MS600), 블랙잭 등등 내 손을 거쳐 간 MP3 재생기기만 해도 DRM을 지원하는 모델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벅스와 같은 음원 포털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음원이 DRM 적용곡이다 보니 구매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일종의 편법이기는 하지만, 구매한 곡을 매번 시디로 굽고 다시 리핑하는 과정을 거친다. DRM 지원기기가 없는 나로서는 합법적으로 음원을 개별구매하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 따로 구매한 앨범을 리핑하는 것은 제한하지 않으면서 개별곡에 DRM을 걸어두는 것은 고무줄 잣대가 아닐까.
두 번째는 모호한 웹상에서의 음원 사용 기준이다. 알다시피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음원을 구매하여 방문자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블로그에 자기가 구매한 음악을 올리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 두 방식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똑같이 직접 구매한 곡이고, 방문객들과 같은 음악을 즐기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물론 음원 사용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저작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일관되지 못한 기준은 구매자들만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음원 제공자 측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