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어렵게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기죽이기다. 어렵게 쓴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글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대단한 글이라는 착각 혹은 신호를 받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착각이란 글쓴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과 개념으로 이루어진 불분명한 글에 해당하며, 신호란 명확한 문장구조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일반 수준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에 대응한다. 후자로써, 어렵게 쓰기는 글쓴이의 지적 권위를 드러내는 한 방법이다.
둘째, 필터링이다. 기죽이기와 크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어려운 글은 논쟁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서 독해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걸러내 줄 수 있다. 이것은 인터넷상의 논쟁과 같은 불특정 다수와의 논쟁에서 유용하다. 글에 의도적으로 (그러면서도 글의 맥락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어려운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논쟁의 방향이 불필요하게 분산되는 것을 막아 준다. 핵심을 찾지 못한 이들은 논쟁에서 걸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도덕적으로도 옳으냐 혹은 정말 실용적이냐, 그것은 잘 모르겠다.
셋째, 개념화이다. 사실 개념화는 전문적인 글일수록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의 두 가지 효과가 다소간 텍스트 외부의 의도에 따른 결과인 반면 개념화는 오직 글 자체의 내용적 맥락에서 의도된 것이다. 이를테면 글에서 '미분'이나 '헤게모니' 같은 개념을 이용하는 경우, 이것을 풀어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개념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비경제적이기도 하고, 개념을 우리말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개념화된 글은 쉬운 글 못지않게 명확하고 간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