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저지를 순 있다. 박찬욱이 학교 숙제라며 '가훈'을 내놓으라고 조르는 초등학생 딸에게 내놓은 가훈 '아니면 말고'의 해설처럼, "뭐든지 멋대로 한번 저질러 보는 거"다. 그런데도 "분위기가 썰렁해지면" 그의 말마따나 '아니면 말고'를 "중얼거려주면" 그만이다.
다음 날 박찬욱의 딸은 선생님께서 "세상에 뭐 이딴 가훈이 다 있냐?"며 새 것을 받아오든가 아니면 뭔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어오랬다고 전했다. 이에 그는 한번 정한 가훈을 무를 수는 없다면서, 즉 이 일에서만큼은 '아니면 말고'를 적용할 수 없다면서, 딸에게 다음과 같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현대인들은 자기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태도다. 세상에는 의지만 가지고 이룰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좌절감을 어찌할 것이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그래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땐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경쟁만능의 사회에서 참으로 필요한 건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이 아니겠느냐. 이 아빠도 '복수는 나의 것'으로 네 친구의 아빠(곽경택 감독)가 만든 영화를 능가하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싶었으나 끝내 그 20분의 1밖에 안 되는 성적으로 끝마쳐야 했을 때 바로 그렇게 뇌까렸던 것이다. 아니면 말고…."
강준만,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쿨 에너지》(인물과사상사, 2007), 42쪽
오늘도 한 가지 실패한 날이지만 얼마 전에 읽은 책이 생각나 웃게 된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 아니면 말고. 대신 다음엔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