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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일기

욕망의 덫에 걸린 행복

사람은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빠르게 적응하므로 행복도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 수준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쾌락의 상대주의와 좋은 사회 계획하기’(1971)라는 미국 심리학 논문에서 처음 쓰인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개념이다. 사실 빠르게 바뀌는 외부 상황이 개인의 행복에 그대로 반영된다면 누구든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행복은 ‘삶에 대한 지속적 만족’을 뜻한다. 그러면 삶에 대한 만족도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욕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바로 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욕망(desire)은 욕구(need)와 달리 무한하다. 밑빠진 독처럼 아무리 물을 부어넣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쾌락의 쳇바퀴 이론은 욕망의 이런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신상녀’는 욕망의 덫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상품은 끊임없이 나온다. 신상녀가 새 상품을 구입하는 순간 이미 눈은 다른 새 상품에 가 있다. 소비 속도를 높이는 만큼 욕망은 더 크게 입을 벌린다. 욕망을 빼고는 행복을 말할 수 없지만 행복은 욕망의 늪 속에서 허우적댄다.

욕망은 인간에게 근본적인 것이라고 <욕망의 발견>(까치 펴냄)은 말한다. 이 책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는 왜 원하는가’라는 부제에 걸맞게, 욕망의 근원과 욕망을 다루는 방법을 추적한다. 욕망은 두 종류가 있다. 욕망 그 자체가 목적인 ‘종국적 욕망’과 이를 이루기 위한 ‘도구적 욕망’이 그것이다.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싶은 욕망은 종국적 욕망이고, 이를 위해 식당에 가려는 욕망은 도구적 욕망이다. 종국적 욕망에는 감정이, 도구적 욕망에는 지성이 주로 작용한다. 욕망 충족의 메커니즘으로 볼 때 지성은 감정에 봉사한다. 누구도 이 위계를 바꿀 수 없다. 도구적 욕망은 조절이 가능하지만 종국적 욕망은 자유의지의 통제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의 노예다. 식욕·성욕·권력욕·명예욕 등은 대표적인 종국적 욕망이다.

행복의 비결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나 그 세상 안의 우리 위치를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꾸는 데 있다. 우리의 욕망, 특히 종국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은 충족시키고 어떤 것은 다스려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이 행복의 본질이다. 종교 지도자와 위대한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실천한 길이 이것이다. 석가모니는 쾌락주의도 금욕주의도 아닌 중도의 길을 추구했다. 유가와 도가의 생각도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서양 고대의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도 비슷하다. 물론 어떤 욕망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 다르다.

보통 사람의 현실적 해결책은 각자 자신의 욕망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적절한 생활 태도를 개발하는 데 있다. 자신의 삶에서 핵심적인 가치에 집중하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비결이다. 여기에 더해 이미 가지고 있거나 주변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에서 만족을 구한다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욕망을 노예로 만드는 순간 행복은 저절로 다가온다.

김지석, <김지석의 종횡사해: 욕망의 덫에 걸린 행복>,《한겨레》, 2008년 8월 2일, 16면.


확실히 행복은 주기적이다. 일이 잘 되어간다 싶으면 문제가 생기고, 다 해결되면 이내 또 걸리는 부분이 생긴다. 적절하게 살기라… 바라는 걸 줄이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