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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경제학

왜 잃어버린 영화표를 다시 구매해야 하는가

매몰비용이 의사결정과 무관해야 한다는 원리는 개인의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여러분이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는 것에서 10달러의 가치를 느낀다고 하자. 여러분이 7달러에 표를 샀지만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표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렇다면 표를 다시 사야 할까, 영화를 보기 위해 총 14달러를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정답은 다시 표를 사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것의 편익(10달러)은 여전히 기회비용(표를 다시 사는 비용 7달러)을 초과하고 있고, 잃어버린 표의 비용 7달러는 매몰비용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N. Gregory Mankiw, 《맨큐의 경제학》(교보문고, 2007), 345쪽

재미있는 사례이다. 그러나 어쩐지 개운하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표를 사면 잃어버린 표 값이 머리에 맴돌 것 같다. 위에서도 말하듯이 마치 14달러를 주고 10달러(가치)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 말이다. 우리가 쿨한 맨큐 교수처럼 단번에 매몰비용을 의사결정에서 제외할 수 없는 것은, 이 과정이 손해를 줄이기 위한 선택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이 아닌 손해에 초점을 맞추어 위의 논증을 좀 더 구체화해 보자.

먼저 영화비를 a라 하고, 영화를 보았을 때의 만족도를 b라 하자. 적어도 영화를 보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영화비보다 만족도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a < b

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이제 표를 잃어버리고 나서 영화표를 다시 사는 것이 옳은지 그냥 집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를 판단해 보자. 먼저 이 상태에서 영화를 보든, 보지 않든 손해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느 경우에 손해를 더 적게 보는지를 판단해 보면 될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잃어버린 영화표의 가격인 a만큼 손해다. 반면 영화를 본다면 2장의 표 값(2a)이 들지만 영화를 본 만큼의 만족도(b)는 손해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래서 2a - b만큼 손해이다.

(보지 않을 때의 손해) = (a)

(볼 때의 손해) =  (2a - b)

여기서는 일단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옳다고 가정해보겠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지 않을 때의 손해가 더 작아야 한다. 즉,

a < 2a - b

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식을 정리하면,

b < a

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영화를 본다는 처음의 전제 a < b에 모순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옳다는 가정은 틀렸다. 결국 처음에 영화를 보기로 하고 표를 구매했다면, 그 표를 잃어버리더라도 한 번 더 구매해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다시 구매한 표를 또 잃어버리고 또 잃어버리고 계속 잃어버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표를 100번 잃어버리더라도 101번째로 영화표를 한 번 더 사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같은 방법으로 가정하여,

100a < 101a - b ⇔ b < a

나온 결과가 처음의 전제와 모순임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표를 n번 잃어버렸다고 하면 아래의 과정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

(n)a < (n + 1)a - b ⇔ b < a

결국 어떤 경우에도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처음에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것과 모순이므로 영화표를 다시 사는 것이 낫다.

(그렇지만 역시 영화표를 100번 잃어버리고도 또 사는 사람은 합리적이라기보단 바보이다. 대신 그만큼 표를 살 동안 지갑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글을 쓰고 나니 당연한 내용을 돌려 말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수식으로 정리하고 나니 처음엔 와 닿지 않던 것이 이해가 된다.)

※이 글에 대한 보충으로 하나의 포스팅이 더 있다.

(참고: 영화표 논의에 대한 보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