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보면, 사람들은 장기적 안목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기보다는 근시안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강하며, 포괄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음악회가 열린다고 해봅시다. 입장권은 5만원 입니다. 두 가지 경우를 설정해봅시다. 첫 번째 경우로, 극장에 가다가 보니 소매치기를 당해서 5만원을 잃었다고 해봅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무사히 극장 앞에 가서 입장권을 사놓은 다음 근처에서 차를 한 잔 마시는 동안 입장권을 잃어버렸다고 합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학적으로 보면, 5만원의 손실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 두 경우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손실의 형태가 한 경우에는 현금이고 다른 경우에는 입장권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두 경우에 다르게 행동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험결과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금을 잃었을 때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음악감상을 하는 반면, 입장권을 잃었을 때는 음악회를 포기합니다. 왜 그런가? 입장권을 잃었을 때 입장권을 또 산다는 것은 음악회에 돈을 두 번 지불하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반면에, 현금을 잃었을 때에는 음악회에 돈을 한 번 지불하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마치 사람들은 마음속에 여러 개의 계정을 설정해놓고 각 계정별로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현상을 정신적 회계(mental accounting)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정전,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 이정전의 Blog, 2009.
공부/경제학
영화표 논의에 대한 보충
이전에 포스팅했던 영화표 논의와 관련하여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한다. 원래는 본문에 짧게 덧붙이려다가 내용이 길어져 따로 포스팅한다.
(참고: 왜 잃어버린 영화표를 다시 구매해야 하는가)
지난번의 글에서 나는 이익이 아닌 손해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이해하기가 좀 더 쉽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처음에 내가 그것을 증명할 때는 다른 하나의 문제의식이 더 있었다. 맨큐 교수는 영화를 보았을 때의 즐거움을 편의상 10달러라는 가치로 두었는데 이것은 별로 와 닿지 않을뿐더러 일반성의 정도도 낮다. 표 값보다 영화의 가치가 커야 함(서수적 효용)은 분명하지만, 영화의 가치를 정확히 숫자로 표현하기(기수적 효용)란 모호하다. 따라서 영화의 즐거움과 표 값을 각각 특정한 값으로 두고 설명하기보다는 내 방식대로 a와 b라는 변수로 두어 대소관계만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
한편, 이 문제를 좀 더 높은 차원에서 고려하여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를 재고해 볼 수도 있다. 최신 경제학의 한 분과인 행태경제학(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방식인데,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이정전 교수의 강연 중 일부를 인용하겠다.
흥미로운 관점이다. 나는 이전 글에서 영화표를 100번 잃어버리더라도 다시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었는데, 위의 정신적 회계 때문에 누구라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예전에 정태인 교수가 <승자의 저주>라는 행동경제학 책을 추천한 적이 있었는데 한 번 읽어볼까 한다.